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경에서 열렸던 북중미 3자회담이 끝났다. 북은 제네바 협정의 수준을 넘지 않는 ‘대담한 해결방도’를 제시하였고 미국은 강온파가 격돌하는 가운데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 큰 성과를 얻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이번 회담은 우리가 참여하지 못한 것을 포함하여 아쉬움만 남겨놓은 것일까? 아니면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북의 전술에 한미 양국이 말려들고 있는 것일까?


중국외교에서 배우다

지난 3월 동료의원 몇 분과 함께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중국의 여러 지도자들과 만나 동북아 현안에 관한 여러 의견을 나누었고 그 가운데 서열 9위 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난 경험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李 상무위원은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언급하면서 지난 몇 년간 북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요청하는 것에 대해 거절하지 않고 지원해 왔다고 밝혔다. 이것은 상대국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특히 그 사실을 국제적으로 알리지 않음으로서 상대국의 자존심도 생각하는 중국의 외교특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신뢰가 3자회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면 중국이 가진 ‘조용한 외교’는 우리에게 웅변하는 바가 크다.


94년 위기와 다른 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가 예측하며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전 당시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을 차례로 방문하여 제시한 ‘로드맵’ 프로그램은 이번 회담을 성사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한다.

두 번째는 변화하기 시작한 북의 경제상황이 우리를 포함한 주변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이다. 7.1 조치라고 불리는 이른 바 ‘시장관리개선조치’, 현대와의 계약을 토대로 한 개성공단 건설, 신의주 특구 발표 등은 북의 개방과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들이다.

세 번째는 북이 미국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더욱 절실해졌다는 점이다. 북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미국의 가공할 군사력에 대한 공포와 그 반대급부의 극단적 증오를 키워왔다. 거기에 부시행정부가 보여주는 일방주의 정책은 북의 공포와 불신을 더욱 상승시켜 놓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꼭 짚어야 할 것은 이번 갈등에 양국이 합의했던 ‘제네바 협정’이라는 출발이 있다는 점이다.


제네바 협정을 준수해야......

2003년까지 경수로를 건설하여 북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조건으로, 북은 핵 개발을 중지하고 국제사회의 감시를 받기로 한 것이 제네바 협정이다. 제네바 협정이 준수되지 않는 것은 양국에 공통적인 책임이 있으나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급변하는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과, 전 정부가 맺은 협약을 일방적으로 ‘무효화’한 미국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상호 원하는 것을 주고 받으며,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던 제네바 협정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북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도 위배되는 핵 활동을 즉시 중지하여야 하며 미국과 주변국은 북의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제네바 협정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냉전사고에서 벗어나야 길이 보인다.

3자회담의 테이블에 우리가 앉지 못했다고 무조건 서운해 할 일이 아니다. 대결로 치닫던 문제가 ‘대화’의 방향으로 돌아선 것을 먼저 환영해야 하며, 이 과정에 우리 정부가 분명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북핵 위기의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딘 것 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인도적이고 평화적이며 실질적인 ‘새롭고 대담한 방안’을 우리도 제시하면 된다. 다양한 대화채널을 더욱 적극적으로 가동하고 신뢰를 축적하는 사업을 만들어 가자.

이렇게 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 6.15 정상회담 이후 역사가 남긴 교훈임에도 일부 냉전세력들은 이념의 잣대를 휘 두르고, 회담에 우리 정부가 빠진 것만을 목소리 높여 공격한다. 그들이 정권의 주축이던 94년 당시, 우리도 모른 채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위기를 자초하는 냉전사고는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야 한다.

2003.04.29
국회의원 임종석
Posted by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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